홧홧함의 비밀

누구나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게 있잖아. 예를 들어 “똥구멍이 홧홧하다”, 이런 상태라면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 있겠어? 아니지. 똥구멍이 홧홧해본 적이나 있어? 훗, 그런 적 있지만 아무에게도 말 해본 적 없다고 되뇌이고 있는 당신 얼굴이 보이는 듯 해.

난 아버지와 관계랄 게 별로 없었어. 중학교 때까진 아버지가 매일 밤 10시 넘어서 들어오셨고 그 다음엔 내가 공부하느라 그랬고, 대학 가고 나선 사실상 남이었어. 그리고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1992년 이민을 갔고, 10년 후에 내가 따라갔지.

상봉 9개월 만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웠지.

엄하기만 했고 말 한마디 섞어보기 힘든 아버지였어. 성인이 돼서 미국에서 방학 때 잠깐 잠깐 만났던 아버진 그에 비해 훨씬 우호적이었고 친근했었지. 아마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민가시지 않았으면 난 아버지가 친근한 사람이라는 걸 영영 몰랐을지도.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약간 비굴한 듯한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어. “너도 똥구멍이 후끈후끈하지 않냐?” 아, 그건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어. 사실을 고백하자면 내 똥구멍은 홧홧하게 타고 있었거든. 난 아버지도 그럴 꺼라 생각은 했지만 차마 그런 걸 물어볼 수는 없었어. 그 침묵의 고리를 깬 것이 아버지였어. 그것도 20년 만의 일이었나?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부터 우리는 무교동에 가곤 했어. 매운 것을 즐기지 않으셨던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모든 음식에 고추장을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매운맛 중독자였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유일하게 의견 일치를 보는 음식이 있었는데 그게 낙지볶음이었어.

그냥 낙지볶음이라고 하면 안되고. “무교동 실비집”이어야 했어. 종로 1가 무화과 제과 골목길에서 꺾어 북쪽으로 20미터만 가면 만날 수 있는 “실비집”. 실비로 먹게 해주겠다는 포부와는 달리 음식 가격은 꽤 했었던 것으로 기억해.

그 집에서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하곤 했어. 어두컴컴한 가게였고 메뉴라곤 낙지볶음, 조개탕, 감자탕, 파전이 전부였어. 맛만큼은 기가 막혔지.

그 맛에 반했던 나는 열심히 전도했어. 교회 전도도 열심히 했지만 실비집 전도도 참 열심히 했어.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도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는 우리 아내 뿐이었어. 스무 살 시절 우리 둘이 실비집에 가면 그 집에 우리 또래는 우리 밖에 없었어. 아직 “이강순 실비집”으로 프랜차이즈가 되기 전이었거든.

우린 언제나 가난했었기 때문에 낙지볶음 하나에 공기밥 세 개만 시켜 먹었어. 그 때 생각했지. ‘이렇게 매운데, 저 조개탕을 먹으면 엄청 시원할꺼야.’, ‘파전 하나 시켜서 같이 먹으면 어떤 맛일까?’

실비집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남달랐어. 미국으로 이사 가서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갈 때면 언제나 10개씩 포장을 해서 얼려서 비행기에 실어 날랐지.

아버지가 나에게 똥구멍의 안위를 물으신 날도 내가 공수해 온 낙지를 먹은 다음 날이었어.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낙지를 먹었지만, 맵기가 지나쳤기 때문에 항상 다음 날이 문제였어.

특히나 낙지 국물에 밥을 비벼먹곤 했던 우리 가족은 더 그랬지. 다음 날 속이 알싸하게 아파서 똥을 싸러 가면 그 낙지 국물에 똥구멍을 데는 기분이었어. 휴지로 닦아도 샤워를 해도 똥구멍에 불기가 가시질 않았어. 그건 내가 중학교 때부터 그랬던 거였는데, 난 차마 다른 가족에게 그런 증상이 있냐고 물을 수 없었지.

그걸 아버지가 나에게 물어봐 주신 거였어. 툭 하고 장벽 하나가 또 무너지는 순간이었어. 스무 해 넘도록 대화 없이 살아온 부자 지간에 견고하지 않지만 높이 쌓여있던 싸리나무 울타리의 기둥이 하나 빠지는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아.

미국에서 가난했지만 여유 있었던 삶은 나에게 최소한 50대의 아버지를 선물해줬어.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30대의 아버지는 생각이 나질 않아. 우리 세대가 모두 겪는 비극이겠지. 그래도 난 50대의 아버지를 만났다는 걸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

한국에 돌아와 4개월만에 낙지집을 갔어. 전도에 유일하게 성공한 아내와 함께. 아내에게도 아직 똥구멍이 홧홧하다는 이야긴 해보지 못해서 아버지와의 이 추억을 들려줄 기회는 없었어. 언젠가 될지 모르겠지만 방구를 트는 그런 날이 오면, 그때 아내에게 들려줄 생각이야.

낙지 기본상


사실 이건 맛집 리뷰야. 정말 간만에 “이강순 실비집”을 방문한 감상을 알려줄께.

1. 정말 매워. 요즘은 캡사이신 넣어서 매운 집이 많아서 더 매운 집들이 있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이강순 실비집”은 마늘과 고추로 매운 맛을 내. 캡사이신을 넣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정말 매워. 낙지 전문가 친구 왈 땡초를 넣는 것 같다고 하는데, 레시피를 물어보진 못했으니 패스.

2. 두 명이 간다면 낙지볶음(₩17,000)에 공깃밥(₩1,000)을 두 개 시켜먹길 권하겠어. 예전에 비해 연포탕(대₩55,000, 소₩40,000)을 비롯해 여러 가지 메뉴가 추가됐는데 다 소용없어. 저녁 때 술 손님으로 돈을 좀 벌려고 하신 모양인데 역시나 주 메뉴는 낙지볶음이야.

3. 살림살이가 좀 괜찮다면 조개탕(₩10,000) 하나 권하고 싶어. 이 집 마늘이 정말 좋아. 조개탕도 마늘이 잔뜩 들어가있어. 종종 썬 대파와 함께. 그런데 청양고추도 들어있어서, 낙지볶음이 맵다고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 더 매워져… 어느 순간인가 혀가 통증을 포기하게 돼. 그럼 안 맵게 먹을 수 있어.

4. 매운 것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다면 파전(₩9,000)을 권하겠어. 기름진 음식이니 아무래도 혀를 좀 달래 줄 수 있어.

5. 먹는 법은 간단해. 일단 젓가락으로 낙지 하나를 공깃밥에 얹어. 숟가락으로 낙지양념을 적당량(조금이라도 많이 뜨면 당신의 위나 혀는 없어지는 거야.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한 맛이긴 해) 떠서 낙지와 밥과 함께 비벼. 요즘은 빈 공기를 하나 따로 줘. 거기다 콩나물과 밥과 낙지를 같이 넣어서 비벼 먹는 사람도 있어. 20년 전의 실비집에는 없던 풍경이니까. 하지마. 요즘 온 티가 나니까.

6. 만약 아이들을 데려갈 생각이라면 포기하라고 해주겠어. 그래도 우리 부모님처럼 무모하게 굴겠다면 하나만 말해주지. 내가 스물 두 살 때였나? 당시 전도에 성공한 여자친구와 낙지를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초등학생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있었어. 난 미쳤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들은 그 아이들을 위해서 우유 1L짜리 한 팩을 가져왔더라고. 양주 먹기 전에 우유 마시기나, 실비집 낙지 먹기 전에 우유 마시기나… 심리적 위안 이상의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어.

7. 맛? 물론 맛있지. 동일 재료의 음식을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해왔으니 밭이나 낙지 공급책이 전부 정해져 있을 꺼야. 집에선 이런 마늘 맛 낼 수가 없어. 낙지는 요리하는 사람의 감이 굉장히 중요해. 날캉날캉한 순간을 잠깐 지나치면 질겨서 먹을 수 없게 되거든. 이 집은 그 포인트를 기가막히게 잘 알아. 야채의 싱싱함도 내가 쳐주는 포인트. 고춧가루와 청양고추 등을 어디서 구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구수하고 깊은 맛이 있어. 맛을 느끼기엔 너무 맵다는 것이 함정.

주의 사항

1. 일단 매워. 정말… 그러니까 국물이 맛있다고 너무 비벼 먹지 마. 탈나.

2. 맵다고 눈 앞에 있는 물을 마셔선 안 돼. 당장의 고통은 꺼줄지 모르겠지만 한 번 물에 입을 대면 계속 마시게 돼. 그럼 조금 있다보면 물을 많이 마시기 위해 낙지를 먹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꺼야.

3. 밥 먹고 가게 나와서 매워서 미치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꺼야. 근처 아무 편의점에나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어. 예전 가게 위치엔 무화과 제과가 있어서 거기서 바를 꼭 하나씨 사먹곤 했는데, 그런 건 없어졌으니 어쩔 수 없고 말이지.

4. 다음 날 일어나면 장이 아플꺼야. 똥 싸고 나오면 똥구멍도 홧홧할꺼고. 별 다른 방법은 없어. 견뎌.

5.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다른 프렌차이즈랑 본사랑 맛차이가 나는가봐. 난 잘 모르겠어.

6. 난 주인과 종업원이 친절한 맛집은 별로 신뢰를 안하는 편이야. 서비스가 개판이라도 욕하면서 오게 만들어야 진정한 맛집이지. “이강순 실비집”에 내가 여자친구와 드나들던 시절에 종업원들은 정말 다 가출청소년 같은 아이들이었어. 건방진 말투에 엉망인 서비스. 화가 날 일이 참 많았지만 화낼 여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어. 음식을 가져다 주시는 것만으로도 아멘이었거든. 지금은 그런 지경은 아니지만, 여전히 뭐 딱히 친절하다고 할 수 없어. 내가 이 집을 신뢰하는 이유기도 하고. 그러니까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인테리어에 우아한 서비스를 기대한다면 다른 곳을 알아봤으면 해.

7. 이미 말했지만 수 차례 전도 결과가 비참해. 겨우 아내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야. 그러니까 가 볼 것을 권하진 않겠어.

남들에겐 몰라도 나에겐 우리 아버지와의 추억의 음식이고, 또 내 아내와의 추억의 음식이니까. 음식이란 건, 결국 기억을 먹는 짓인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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